눈치 빠른 사람 vs 느긋한 사람

성격에 대한 상념

천성이 타고나길 예민하고 성질이 급한 나는 일생동안 둔하고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의 눈치와 기대에 맞춰 내 인생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사에 ‘나’보다 ‘남’의 입장이 먼저 고려되었다. 누군가는 이것을 ‘착하다’라고 표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코 착한 것이 아니다.

알바자리 하나도 구직하기 힘든 요즘, 오늘 문득 집안일을 하다가 불쑥 든 생각. 한국사회는 눈치빠른 사람을 채용하려고 하지, 아마도 눈치라는 게 사회생활에서는 가장 큰 미덕이겠구나. 그렇다면 나는 눈치가 빠른 사람인가? 항상 눈치빠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해왔던 것 같다. 타고나길 예민한 사람인데 더더욱 기민하게 살려고 했구나. 와, 나 정말 그랬구나. 그러니 어찌 정신이 멀쩡하겠나 하는 생각이 수초만에 스쳐 지나갔다. 나 역시 현대인이 가진 몇가지 정신적 문제들을 안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보니 당연했을 수밖에 없었겠다라는 생각이 들자 나 자신이 측은하기도 하고 그 내재적 원인을 내 스스로 납득할만한 일종의 나의 정당성이 느껴지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그 동안 내가 가장 괴로워왔던 것은 나 스스로 나를 이해할 수 없는 내적 불일치성이었다. 흔히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지만 그러기 위한 자기합리화가 어려웠달까.

40이 다 되어가도록 여전히 나는 묻는다. 나는 진정 어떤 사람인가.

  • 나는 나에게 엄격하다.
  • 나는 겁이 많다.
  • 나는 예민하다.
  • 나는 눈치를 많이 본다.
  • 나는 과거를 돌아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 나는 느긋하고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 나는 타인에게 넓은 이해와 포용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싶다.
  • 세상을 두려움없이 편안한 눈으로만 보고싶다.

상처받을 만큼 굴곡진 삶도 아니었는데 희한하게도 리스팅 속의 나는 상처투성이의 어른아이같구나.

기질은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삶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사회생활에 최적화된 눈치빠른 사람과 느긋하고 여유로운 사람은 양립가능한가? 조금 더 생각해볼 문제이긴 한데 눈치라는 게 마치 무슨 수동센서처럼 켰다 껐다 할 수 있는 거라면 가능하겠다. 꼭 필요한 때에만 그 눈치를 활용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눈치 스위치를 평소에는 끄고 산다면 위험성은 없는가? 불안하지 않은가? 물론 나의 기질상 불안하다. 어떻게 해야 불안하지 않을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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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믿어야만 하는 것 같다. 괜찮을 거라고.

불안이라는 내면의 돌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해 줄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누군가가 말하듯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어둠이 조준사격하기 어렵다는데 하루하루 바쁘게 정신없이 몸뚱이를 움직이고 마치 신을 믿듯 나 자신을 믿어보자. 괜찮을 거라고.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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